아모레퍼시픽 계열사인 에뛰드하우스의 PB 브랜드, 에스쁘아는 대기업의 횡포(?)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데, 사실 에스쁘아의 전신은 다름 아닌 태평양의 향수 전문 브랜드인 빠팡 에스쁘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은 아모레퍼시픽의 2006년까지의 옛 명칭인데, 그 역사는 한국 전쟁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근본 있는 기업이었다. 그 말은 즉, 여러분이 역사책에서나 보던 그 시절에 태평양은 사업을 하고 있었단 얘기다.
이 내용은 차후 더 언급하겠지만, 이렇게 태평양은 한국의 근본 중의 근본 있는 기업이었고, 그 태평양에게서 나온 에스쁘아는 말 그대로 금수저를 쥔 제벌 2세라 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흔히 생각하는 금수저 개망나니 재벌 2세가 아닌 철저히 집안에 휘둘리며 고통받는 재벌 2세였다는 점에 있었다.
고통의 시작은 다름 아닌 런칭 시작 직후. 한국 향수 시장이란 불모지를 개척하고자 태평양은 1999년 대한민국 최초의 향수 전문 브랜드 '빠팡 에스쁘아(Parfums eSpoir)'를 런칭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기호품에 불과했던 향수는 해외 브랜드가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어 신토불이 국산 제품의 경쟁력은 사실상 전무했고, 그 작은 시장마저도 신흥강자인 섬유탈취제(...) 페브리즈(1999년 한국 런칭)에 철저히 밀리고 있었다.
기호의 성향도 있었지만 향수 자체가 동양권에서는 그 중요성이 사실상 유명무실해 시장 자체가 작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바로 서양권의 흑인과 백인 같은 인종과 달리 동양권, 특히 한국인은 체취 자체가 거의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냄새가 날래야 날수가 없는 기이한 종특(...)과 좀 더럽다 싶으면 곧장 목욕탕에 투신하는 특공정신(...)에 한국인의 소비 기준에는 향수고 데오드란트고 나발이고 없었고, 그나마도 향이 은은하게 퍼진 로션과 토너 등 피부 개선 화장품 정도만 사용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향수는커녕 웬만한 방향제도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빠팡 에스쁘아는 저렴한 가격대와 향수를 사용하고 싶은 신세대들을 타깃으로해 그 당시 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했지만, 이는 원투펀치로 돌아와(...) 말 그대로 빠팡하게 죽도록 얻어터지고 나서야 향수 시장에는 신토불이 애국 마케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닮고야 만다.
런칭 후 약 3년 동안 국내 향수 시장 점유율 16%대를 겨우 확보해 백화점과 마트에 입점하겠다는 포부의 기사 하나 달랑 올라와야 했을 정도로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것에서 당시 상황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할 수 있지만 손익을 따져보면 매출에 비해 턱없이 느껴졌던건지, 결국 에뛰드와 합병해 에뛰드 하우스에서 한동안 브랜드를 유지하게 된다.
에뛰드로 인수된 시점부터 에스쁘아는 빠팡을 없앤 에스쁘아로 리브랜딩 되었는데, 그때부터 점점 향수 제품이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색조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로 각인되어 있더라.
요즘엔 아예 새로운 향수 라인업 자체가 없어지면서 완전한 색조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로 만들어 놓기에 이를렀다. 지금까지 이력을 쭉 살펴보면 부모의 말에 휘둘리기만 하다 마지막엔 본연의 특색마저 사라진 꼴이니, 달리 생각하면 이제라도 자리 잡아서 다행인걸지도.
저렴이 브랜드 중에서도 나름 입지 다져놓고 열심히 노젓는 에스쁘아를 보면 괜스레 측은지심한 마음이 든다. 요즘, 향수 시장 잘 되던데. 하고.
역시 인생은 타이밍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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