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가 화장품의 아버지, 한국 로드샵의 선조 격인 미샤는 2000년, 창업주가 화장품 연구원이던 시절 화장품의 제조원가를 보곤 어이가 없어 만든 브랜드다. 미샤가 있었기에 지금의 저가형 뷰티 시장이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샤가 없었을 땐 애초에 이런 시장 자체가 없었으니까. 즉, 지금의 한국 오프라인 코스메틱 프랜차이즈 시장은 미샤 이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는 얘기.
미샤는 모든 제품 3,300원으로 통일하고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지 2년 만에 이대에 직영 1호점을, 2004년엔 매출 천억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다.
1999년 올리브영이 개업하면서 약국을 빙자한 드럭스토어 형식으로 2002년까지 약 3년 동안 5호점을 오픈했을 때 미샤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단 2년 동안 200호점(...)을 뚫어버린다. 저렴한 가격, 유통마진 최소, 마케팅 최소라는 초저예산이라는 컨셉을 고민할대로 고민한 결과였다.
돈을 버는 족족 로드샵을 늘려가기 시작했고, 잔고가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로드샵을 늘려버렸다. 오픈 행사로 바짝 땡기면 다시 그 옆에 지어버리는 식의 끝없는 확장을 한 결과, 전국에서 3일에 하나씩 미샤 매장이 생기는 수준으로 흥하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당연하게도 홀로 독주하기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샤의 저가 정책과 압도적인 오프라인 확장을 똑같이 카피해 시장에 뛰어든 더페이스샵 덕분이었다. 심지어 이쪽은 미샤가 생각도 않던 탄탄한 브랜딩과 사회공헌까지 갖추고 나와 미샤를 위협캐했다. 더 싼 가맹료, 더 좋은 품질의 화장품, 그리고 빠방한 마케팅까지.
2003년 말 더페이스샵은 설립 이후 6개월 만에 매장을 100개나 오픈해버렸고, 미샤보다 먼저 해외 시장을 공략하면서 투자가 몰리자 국내 시장까지 정복해버린 더페이스샵은 미샤를 찍어누르고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지켜본 후발주자의 투자자의 채무자까지 기대캐해버려 바야흐로 대 로드샵 시대가 열리게 된다.
우습게도 이런 저가 로드샵이 쏟아지면서 소비자의 심리는 착한 저가 화장품에서 나쁜 싸구려 화장품이란 인식이 박히기 시작했고, 합리적인 소비자를 제외하면 근본도 없는 브랜드들을 서로 비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항상 쓰던 화장품만 쓰기 시작하자 흥하던 저가 코스메틱 시장은 이러나저러나 더페이스샵 앞에 무릎 꿇어버린다.
이러한 과열 경쟁 속에 산전수전은커녕 온실 속 화초처럼 업계 정점을 찍었던 미샤는 결국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위기에 빠지고 만다. 더페이스샵의 독주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던데다가 버는 족족 늘려놓았던 가맹점들의 매출이 꺽이면서 발목을 잡히고 만 것이다. 결국 2006년에 두 차례 구조조정과 메리 퀀트 코스메틱의 로고 시비로 로고도 바꿔야 했다. 2007년엔 신생 저가 브랜드들의 러브콜로 능력 있는 직원들의 대거 이직까지 이어졌다.
마케팅을 하자니 돈이 없고, 제품 단가는 여전히 3,300원 고정비라 패키징은커녕 성분조차 건들 수 없었다. 진퇴양난으로 주가는 연일 폭락했고, 암흑기는 꾸준히 이어져 결국 유일한 아이덴티티인 3,300원을 정책을 벗고서야 길고 긴 암흑기에서 해방되는 듯했다.
그래도 업계에서 수년간 익혀온 노하우와 다짜고짜 늘린 매장 덕분인지 바뀐 고가 정책과 더불어 훌륭한 입지와 유통망을 통해 매출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곤두박질치던 주가도 다시 복구되면서 기사회생하게 된다.
미샤를 되살린 고가 정책은 2020년인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올해로 20주년을 맞아 자축도 해야 할 시기에 어째서인지 최근 분위기는 다시 2006년의 암흑기처럼 돌아간지라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초기에 굳혀놓은 저가 브랜드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굳혀져 있어 이래저래 안습한 포지션인 데다가 최신 트렌드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미래가 가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메틱 시장은 이제 확실히 오프라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시기에 들어섰다. 스마트폰의 도입으로 인해 스마트컨슈머가 자리 잡은 요즘, 오프라인보다 압도적인 편의성과 경제성으로 무장한 온라인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오프라인의 구매력조차 감쇄되기 때문이다.
이제 품질은 여느 브랜드든 다를 바 없어졌고, 젊은 층은 저렴하지만 뒤떨어지지 않은 힙한 이미지를, 중장년의 기득권층은 올드하면서도 고결한 이미지를 원하는 요즘엔 미샤가 구축할 수 있는 경쟁력이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최근에는 어마어마한 할인 폭을 보이면서 고가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트리고 있는데, 요새 트렌드를 나름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렇게 왔다 갔다 할수록 소비자가 더 떨어져 나간다는 거지만, 기껏 비싸게 주고 샀더니 몇 달도 안돼서 반값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소비자가 좋아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분명 현재의 미샤는 예쁘고, 잘 만들었다. 다른 근본 없는 브랜드와는 대조적으로 20년 동안 성공과 실패를 맛본 미샤이다. 최근의 장기침체는 미샤의 세 번째 고비겠지만 그래도 그 근본 자체는 변함없으니, 이 자리를 빌려 미샤를 응원해본다. 미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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