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근본이 없다는 인상을 받기는 쉽지 않은데 스티멍은 해냈다. 2019년 탄생한 이 브랜드는 세계 최초 패스트 뷰티 브랜드를 표방했다. 근본도 없는 와중에 세계 최초를 표방하는 건 기자들의 단골 멘트 중 하나인데 내세울 게 없으면 뭐라도 만들어야 하는 브랜드 특성상 세계 최초만큼의 권위를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안타깝지만 최초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브랜드를 표방한 브랜드처럼 괴상하고 우스운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패스트 뷰티라는 멘트에 꽂혀서 찾아봤는데 런칭한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발 빠르게 일본 진출을 꾀했더라. 그래서 패스트 뷰티인가, 패스트 전략을 쓰는구나. 아닌가, 4드론에 가깝다. 날빌도 이런 날빌을 쓰는구나 싶더라. 게임 용어이니 익숙하지 않으면 방금 멘트는 잊어주세요.
왜 패스트냐 하니 패스트푸드의 그 패스트인 것 같다. 립스틱으로 판매 중인 립피스는 액상식 색조 제품이다. 쉽게 발리고 쉽게 쓸 수 있다. 패키징도 저렴하게 만들어졌다. 그렇다. 그냥 틴트다.
초기에 3,500원으로 최저가 전략으로 빠르게 시장을 확보하려 했고, 그 결과가 초저가 패키징과 패스트 마케팅 전략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전략은 한국 로드샵의 선구자이자 모든 뷰티 저가 정책의 원조 격인 미샤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티멍은 보그의 인터뷰에서 미샤의 캐치도 비슷하게 써먹었다. "화장품은 비쌀 필요가 없다"고.
당연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너무나도 달라져 버렸고, 어떻게든 길가에 매장 하나 놓을 수 있던 그때완 달리 지금은 미칠듯한 임대료와 온라인만도 못한 수익 구조에 혀를 내두르며 미샤와 같은 전략으로 같은 성장을 이루기는 결코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주 당연하게도 3,500원이었던 스티멍의 제품들은 1년 만에 57%나 더 올린 5,500원에 팔면서 초기 저가 정책도 무너져버렸다. 캐치에는 타 업체 립스틱 한 개 살 돈으로 스티멍 제품 10개를 산다고 홍보했지만, 이제는 1개 살 돈으로 5개 사는 꼴이다. 그래도 싸다 생각하는가? 5,500원 대의 틴트는 정말 무수히 많은 편이라는 걸 잊지 말라.
마케팅 비용도 초기 미샤보다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고, 국내 로드샵보다 먼저 일본 진출을 꾀하다 일본 내 로드샵 몇 군데 입점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오히려 관리적 측면 비효율이 따라왔을 것이다. 덕분에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고는 못 배길 수준까지 갔던 모양, 저가 정책은 순식간에 무너졌지만 판매량은 유지되었으니 잘못된 판단으로 지른 결과임에도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불행 중 다행일지도.
편의점에 입점할 만큼의 편의성을 노린다 했지만, 그 어떤 대기업도 편의점에 타사의 뷰티 제품을 입점시키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았어야 했다. 괜히 드럭스토어에 코스메틱 제품들이 입점하고 판매되는 게 아니다. 언제나 건방진 생각에는 그만한 창발적 사고와 전략이 필요한 건데, 스티멍에는 안타깝게도 그런 가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구겨지고 망가지는 어설픈 패키징하며 햄버거 세트는 족히 시켜 먹을 수 있는 가격은 더 이상 초기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더 이상 마케팅만으로는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역량에 있어 아쉬움이 따를 뿐이다. 앞으로의 행보도 비슷할 테니 리빌딩 이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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