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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oir / 이글립스(EGLIPS)에 대해 알아보자

March 14, 2020  20:16

 

 

태생이 근본 없는 브랜드는 이전부터 얘기했지만, 자사의 연혁을 밝히는 것을 굉장히 꺼려한다. 이글립스도 마찬가지다. 연혁은커녕 소식조차 쉽게 찾기 힘들다. 꾸준히 판매한 만큼 자신을 알리고자 할 법도 한데 절대 죽었다 깨어나도 알려고 하지 말라는 진한 프레셔를 이글립스에서는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얘기하겠다. 관계자라면 눈물 없이는 못 들을 이글립스의 이야기를...

 

이글립스하면 앞으로 떠올려야 하는 단어, 존버

이글립스는 태동부터 존버로 시작해 존버로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글립스의 창업주는 화장품 사업에 관심은 있으나 자본력에서 뒤떨어지고, 사업적 감각이 다른 사업가들보다 처지는 편에 속했다. 지금까지의 성장이 이를 반증한다(...)

 

2006년 당시 미샤가 암흑기를 겪고, 더페이스샵이 날뛰고 있으며 새로운 감각의 뷰티 프랜차이즈들이 속속 개발되어 진출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때 이글립스도 태어났다.

 

온라인을 뜻하는 e(?), 글로스와 입술을 뜻하는 gloss+lips의 합성어인 이글립스는 한국의 온라인 전용 립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를 표방하였지만, 문제는 그 당시 상황이다. 저가 로드샵이 시장을 뒤덮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인터넷 쇼핑몰도 저가 화장품으로 도배가 되어 전쟁터가 따로 없던 시기였다. 당연하게도 창업주가 선택한 건 그저 존버뿐이었다.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그냥 존버했다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다. 어마어마한 투자금으로 오프라인에는 기업형 로드샵이 들어섰고, 온라인은 웬만한 저가 정책으로는 경쟁력조차 없던 시기였다. 마케팅이면 마케팅, 제품이면 제품,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던 이글립스는 그저 묵묵히 존재하기만 했을 뿐 시장에 어떠한 파란도 불러오지 않았다. 파란은커녕 약 4년 동안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그 유명한 리만 브라더스가 폐업을 하고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모든 금융 시장이 박살 났으며, 세계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때조차 이글립스는 버텨냈다. 버텼다고 봐야 할지, 그냥 지나갔다 봐야 할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절묘한 수요의 성립 덕분인지 경제가 휘청이면서 저가 화장품에 대한 인기가 다시 치솟아 올랐고, 당시 업계의 트렌드로 저가에서 중저가 혹은 고가 정책으로 선회하던 와중에 이글립스는 저가 화장품을 고집해 겨우 시장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말을 잇지 못할 촌티 나는 디자인은 덤

자본에서 밀리는 만큼 오프라인 마케팅은 절대 불가능했고, 온라인 마케팅도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블로거와 품평, 리뷰 등으로 간신히 이름을 오르내리게 하고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뒤떨어지는 디자인과 마케팅은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부끄러운(...) 수준이었고, 그런데도 꾸준히 팔리는 것에 감사하면서 존버를 이어갔다.

 

대충 이런 분위기였으리라

꾸역꾸역 버틴 덕분에 매출이 나고, 오른 매출로 제품도 늘리고, 사원도 늘리고, 이미지도 쇄신할 겸 2013년쯤 로고도 바꿔버린다. 근데 바꾸는 수준으로 끝난 게 아니라 거의 리브랜딩하듯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갈아 엎어버리는데, 이 당시 격동하는 저가 스타트업 사이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법으로 기존 이미지를 숨기는 걸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바뀐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인터넷 쇼핑몰에 더 많은 제품을 납품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제품이 노출되자 자연스럽게 인지도의 상승으로 이어져 왓슨스와 롭스에 입점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이글립스 입장에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뽕(...)이었을 것이다

매출은 연일 상한가를 갱신했지만 이글립스의 경영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날아오를 때조차 존버를 선택하여(...) 추가적인 매출 상승을 스스로 억제했다. 발 빠른 마케팅과 폭발적인 세일즈가 필요한 시점에도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한 이글립스는 그 덕분에 로드샵 진출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아무 일도 없다.

 

앗... 아아...

어쩔 수가 없는게, 겨우 다져놓은 이미지가 괜히 깝죽거리다가 박살이 날까 우려스러웠던거다. 오죽하면 이글립스가 외국 브랜드로 오인하며 구매하는 구매층까지 있는데 혹여 한국 중소기업 이미지라도 박혀버린다면 기껏 쇄신한 이미지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은 당연했으니, 이글립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한 듯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 안돼

2020년의 이글립스는 여전히 저가 브랜드들 사이에서 존버하고 있다. 안정적인 회사 규모와는 달리 최신 트렌드에만 민감도를 높여 SNS 마케팅에만 집중하고 별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 딱히 뭔가 더 해볼 만한 요소도 없기도 하고, 무언가 한다고 해서 큰 이득을 볼 것 같지 않아서인지, 현재에 만족하며 꾸준히 존버의 길을 걷는 이글립스는 앞으로도 존버할 것이 분명하기에 업계가 폭발하지 않는 이상 이글립스는 영원할 것이다.

 

올해도 생겨나고 사라지는 코스메틱 브랜드들에게 근성이 없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이러한 이글립스의 사례가 실존하기 때문이다. 존버는 승리한다는 걸 항상 명심하자. 존버는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