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oir / 코스메틱 시장에 대해 알아보자
사실 이 글은 '힌스(hince)에 대해 알아보자'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힌스 얘기는 온대 간대 없고 코스메틱 시장 얘기만 늘어놓고 있어서 주객전도가 된 이 글을 어찌해야 할지 생각하다 결국 제목을 바꾸게 되었는데(...), 다시 보니 뭐 이리 길게 썼나 싶고..
힌스는 다시 쓰겠지만 그래봐야 힌스도 근본 없는 브랜드여서 이 같은 브랜드들은 웬만해선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코스메틱 리뷰할 때 사실 언급할 게 별로 없는 편이다.
시기만 다를 뿐이지, 어느 순간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와서는 환경이 어쩌녜 저쩌녜, 사회에 환원을 하겠녜, 우린 동물실험 안하녜 뭐녜 말만 그럴듯하게 늘어놓고 다짜고짜 자기들은 누군가를 위해 탄생한 특별 하디 특별한 브랜드라 주장하는데, 뜯어보면 특별한 건 하나 없고 제품 하나로 블로그며 SNS며 마케팅 떡칠을 해놓고는 얼른 사가지 않으면 트렌드에 뒤쳐질 것처럼 겁박을 주는 게 요즘 트렌드라면 트렌드인 듯 싶다.
저 단계가 끝나면 갑자기 해외를 진출하겠다며 생난리를 치다가 난 이렇게 대단한 브랜드고 해외에서도 날 알아주고 있다며 온갖 관심을 구애하는듯 하더니 어느 순간 쥐 죽은 듯이 또 조용해진다.
멀리서 지켜보면 저게 뭔 짓인가 싶다가도, 무근본 브랜드라면 단 한 번 예외도 없이 똑같은 짓 되풀이 하니, 무슨 기업이 사람도 아니고 사춘기를 겪나 싶어 생각하다 보면 묘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
대체 이 브랜드들은 왜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걸까, 왜 이런 브랜드들이 계속 생겨나는 걸까. 이 의문을 해소시키기 위해 한국 코스메틱 시장 생태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아마 예비 사업자나 사회초년생이라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스타트업, IT나 문화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친숙한 단어일 것이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규모의 창업 형태를 뜻하는 이 사업 방식은 사실 IT나 문화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모든 산업에 해당한다. 코스메틱 시장도 예외는 아니여서 현재 대부분 양산되는 무근본 브랜드들이 대부분 이런 스타트업 형태를 띄고 있다.
IT나 문화 산업은 아무리 특별한 아이디어라도 시장성이 부족하거나 수익이 보이지 않으면 시리즈 B, C 투자를 받기도 전에 망해버리는 편인데, 이는 사업을 진행하는 CEO의 역량이 뛰어나도 IT 시장이 워낙 크고, 레드오션이라 초기에 수익을 만들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웬만한 스타트업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 때까지 투자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데, 투자 이후에도 그 아이디어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는데다, 성공한다 한들 결과를 보기까지 운도 따라주어야 해서, 웬만한 벤처캐피탈은 IT나 문화 산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런데, 그에 비해 코스메틱 시장은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거의 매번 타갈 정도로 허들이 낮다. IT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게 아니라 그냥 다짜고짜 쉽다. 왜냐하면, 여기 소비자들은 상식 이상으로 관대하기 때문이다.
코스메틱 시장을 움직이는 대원칙은 다름 아닌 아름다움이다. 예쁘면 산다. 다 필요 없다. 오바 좀 보태면 소비자가 아둔하고 멍청하다 느껴질 정도로 제품에 대한 본질은 안중에도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다. 오직 미적인 관점에서 마음에 들면 일사천리로 결제해버리는 게 이 바닥 통념이다.
이런 소비 심리는 사실 소비자가 아둔하거나 멍청한 게 아니라 대단히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코스메틱 시장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IT 시장은 수요를 집계할 수 없어서 첫 시작부터 미시적인 통계에 의존하지만, 코스메틱 시장은 말 그대로 열린 시장이다. 수요와 공급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데다가 수요를 충족하는 것에 대단한 아이디어도 필요 없다. 예쁘면 그만이란 대원칙을 상기하기만 하면 누구나 코스메틱 시장에 진입하는 게 가능하다. 따라서 본질이 어쩌고 저쩌고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그 덕분인지 코스메틱 시장의 모든 제품은 반 강제적으로 상향 평준화를 이룰 수 밖에 없었는데, 예쁘다 생각한 디자인은 너도나도 차용했고, 특허로 내건 디자인은 적당히 희석해 더 예쁜 제품으로 내놓았다.
네오디뮴 자석을 넣은 직사각형 패키지의 립스틱,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팔레트, 어디서 써본 듯한 색조 화장품들의 품질은 더 이상의 유의미한 차이도 없어졌고, 이런 제품들의 생산 난이도가 높지도 않아 업체별 제조 단가의 경쟁력도 사실상 전무했다.
따라서 브랜드들이 품질과 단가로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수요가 많지 않은 고가의 화장품은 이미 근본 있는 브랜드들이 자리를 채우고 앉아 무근본 브랜드들은 경쟁할 수 조차 없었으니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저렴이 무근본 브랜드들의 피 터지는 마케팅 전쟁이었다.
어차피 품질도 똑같고 단가도 똑같다. 고가 브랜드로는 입지 자체를 다질 수도 없다. 그럼 결국 저가 화장품 시장뿐인데 다행스럽게도 폭발적인 수요가 보장되어 공급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렇게 고심 끝에 내린 결론,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한 무언가를 하자. 그렇다. 노오오력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그 노오오력을 해봐야 유의미한 경쟁은 오직 마케팅 뿐이여서, 인플루언서와 SNS를 통한 자사 제품 노출과 자본박치기로 트렌드를 유도해 핫 아이템이라는 되도 않는 기만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고자 했는데, 이런 전략은 다른 시장이었으면 일단 구매하기 전에 타사의 제품과 비교해 품질을 의심하면서 브랜드를 따져가며 구매를 고려했겠지만 코스메틱 시장에 그런 건 없었으므로(...) 이런 막장 신생아들이 양산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VC에서는 코스메틱 브랜드라 하면 아무런 저항없이 투자를 내어주었다. 시장 성향상 수익이 바로 바로 보이는 데다가 사업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많지 않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만큼 안정적이고 합리적 투자도 없거니와 잘 터지면 닥터자르트, 3ce 처럼 쏠쏠히 재미를 보기엔 좋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한국 VC의 투자 성향이었다. 투자에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했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해외 시장 진출이었고, 해외 시장을 노리지 않으면 시리즈A 같은 대규모 투자를 아예 해주질 않아, 수많은 신생아 브랜드들이 해외 전략을 반드시 포함해야만 했다.
당연하지만, 한국에서조차 근본이 없는 마당에 해외를 진출하게 되면 웬만한 브랜드는 대부분 헛물만 삼키다 멘탈이 철저히 박살 난 뒤 귀국하여 한동안 현자타임(...)을 보내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다른 브랜드도 똑같이 저지르다 보니 나는 이 현자타임 시기를 신생아 브랜드들의 최종 테크 트리라고 표현하곤 했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또 어이가 없는게, 대부분 해외 시장을 한국 시장처럼 만만하게 보고 접근했다가 망한다는 점이었다. 마케팅에 얼마나 썼다고, 쓰는 만큼 매출로 바로바로 찍혀 버릇든건지 대부분 신생아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가 고평가 된 줄로 알고 아주 어깨가 하늘을 뚫고 승천해 있기까지 했다.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이라곤 마케팅뿐인 신생아들이 해외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게 가능키나 할까? 품질 면에서 해외 제품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고, 수출로 인한 리스크를 고려도 하지 않은 브랜드들이 말이다.
이런 실패 사례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 브랜드가 있긴커녕 매년 똑같이 고꾸라지는 브랜드들을 보면 그저 경이롭다는 표현 외에는 어떠한 단어도 떠오르질 않는데, 더 놀라운 점은 이런 실패를 경험하고도 포기하지 않는 자뻑형 브랜드가 종종 튀어나왔단거다.
착각하지 말자. 신생아 브랜드들은 결코 잘나서, 가치가 있어서 팔리는 게 아니다. 그런 소비가 용인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매출이었을 뿐이고, 그 매출은 마케팅을 끊으면 바로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하락 폭을 보이지 않는가. 당장에 네이버 광고만 빼도 매출의 90%는 날아갈거다. 신생아 브랜드들의 가치는 고작 그 정도의 가치니까.
소비자들은 그만큼 합리적이다. 마케팅도 안 한 무가치 무근본 브랜드를 구매할 의향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마케팅이 브랜드의 전신이 되면 그 또한 실패할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기업을 만드는 게 첫 과제가 아닐까. 건실하고, 착실히 쌓아가는 기업. 이런 당연함이 무색해질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돈장난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