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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oir / 맥(MAC)에 대해 알아보자

264cafe 2020. 3. 20. 17:49

 

 

 

 

별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던가, 맥은 맥이다. 남자에게 맥은 애플일 뿐이지만 여자에게 맥은 오로지 맥뿐이다. 메이크업(Makeup), 아트(Art), 코스메틱(Cosmetics), 줄여서 MAC(이하 맥)은 198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설립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근본이 철철 넘치다 못해 터져 버린 브랜드임에도 역사 자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문 편인데, 아무래도 코스메틱 업계의 진한 특성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쁘면 그만, 브랜드 가치가 천정부지로 높은 브랜드일수록 그저 믿고 구매해버리는 소비층이 대다수라 브랜드 연혁이 어찌 되든 예쁘기만 하면 된다. 웬만한 논란의 중심이 되지 않는 한 코스메틱 업계가 대체적으로 조용한 이유는 큰 문제가 없으면 판매에 문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맥이 어떤식으로 성장해 왔는지, 왜 에이즈 환자를 지원하는 펀드를 개설하게 되었는지, 잘 찾아봐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정보들 투성이인지라 적당히 썰로 풀어보겠다.

 

맥의 두 창업주, 웃지마라 이 시절엔 다 이러고 다녔다.

때는 1970년, 프랭크 안젤로(상단 사진 좌측)와 프랭크 토스칸(상단 사진 우측)이 운명적인 만남을 겪으면서 시작된다. 프랭크 안젤로는 당시 22세의 젊은 사업가로 미용실을 체인으로 운영할 만큼 수완이 뛰어난 게이였고, 19세의 프랭크 토스칸은 이탈리아에서 캐나다로 넘어온 사진 찍는 게이였다.

 

그렇다, 두 사람은 게이다.

 

두둥 (심란)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금새 연인 사이로 발전하였는데, 어느 날 두 사람은 사진 촬영 도중 사진에 잘 찍히는 메이크업 색조가 없다는 것에 극도의 절망감을 느꼈다. 당시 코스메틱 업계는 스킨케어 화장품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었고, 당연히 색조 화장품은 뒷전으로 밀려 트렌드의 변화 없이 쓰던 색이나 계속 쓰는 편이었다. 

 

이를 프랭크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직접 색조 메이크업 화장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답답해서 내가 만든다

운 좋게도 당시 토스칸의 예비 처남이었던 빅터 카살레는 대학에서 화학 전공을 탄 공돌이(...)였고, 프랭크들은 두 사람이 만족할만한 색감을 가진 색조 화장품을 생산하기 위해 그를 열심히 굴리기로 한다.

 

빅터에게는 작업실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녔는지라 안젤로가 운영하던 미용실에 딸린 주방을 내어주며 그들이 바라는 색감을 가진 화장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를 공밀레 속으로 집어넣게 된다.

 

컨셉은 우리가, 만드는 건 니가.

결국 그는 세상에 없던 발색력과 유지력을 가진 화장품을 기어코 만들어내고야 만다. 프랭크들은 이에 자랑하듯 주변 지인과 포토그래퍼, 아티스트들에게 자신들의 제품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따봉을 치켜세우며 칭찬하자 뽕(...)이 차오른 나머지 백화점에 편집숍 만들며 자신들의 제품을 직접적으로 판매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1984년 토론토의 심슨스 백화점 2층에 첫 오픈한 맥의 전신되시겠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분들이 떠오른다 (좌 스티브 워즈니악, 우 스티브 잡스)

계주생면이라 하던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기듯 사업가 기질이 충만한 프랭크들은 당시 메이크업 브랜드들이 스킨케어에만 주력하는 틈을 타 아예 색조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한다. 핑크 크레용 같은 강렬한 색을 가진 플라밍고 립스틱을 공개하면서 추가로 23가지의 크레용 컬러 립스틱 외 다양한 색조 화장품을 선보여 소비자의 이목을 끌었고, 매장에는 업계 최초로 프로페셔널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배치해 색조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그들의 모토는 모든 연령, 인종, 성별을 위한 브랜드였는데, 이는 당연히 그들의 정체성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성소수자가 차별받는 시대에서 그들의 활약은 파격적이었다

두 사람의 터전이었던 캐나다는 당시 퀴어 문화의 성지였다. 그 역사부터 다른 나라와는 깊이가 달랐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1964년 밴쿠버의 사회 지식 연합이란 단체까지 올라간다. 이 단체에서는 처음으로 동성 결혼과 레즈비언, 드랙퀸과 사디즘 같은 성소수자의 개성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시작했고 이런 단체와 논의가 이어진 퀴어 문화의 성장 속에 1969년, 형법 상 두 남성의 성관계에 대한 처벌 조항을 삭제하기에 일렀었다.

 

이렇게 일찍이 퀴어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인 만큼, 캐나다의 가치관과 배경 속에서 맥의 모토를 훌륭히 지켜낼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캐나다에 한정된 얘기로, 캐나다 다음 코스메틱 시장이라 여겼던 미국은 인종차별과 퀴어 혐오로 점철된 곳이었다. 성소수자 딱지가 붙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었던 만큼 미국 진출은 한동안 요원해 보였는데.

 

바로 그 순간, 팝의 여왕이 나타난다.

 

언니 왔다

저항의 화신이자 패션의 아이콘, 해방가이면서 동시에 선구자였던 팝의 여왕 마돈나는 당시 전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공교롭게도 프랭크들의 지인이었고, 마돈나의 요청에 따라 맥은 마돈나의, 마돈나에 의한, 마돈나를 위한 색인 러시안 레드(현재 매트 립스틱) 개발해 제공하였다. 이를 마돈나가 90년 블론드 앰비션 투어 내내 바르고 다니면서 맥의 인지도는 그야말로 폭발해버렸는데, 미국에서 없어서 못 살 정도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마돈나가 인증한 브랜드인 만큼 맥의 미국 진출 당시 행보는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1985년 미국에 최초로 에이즈가 발병된 뉴욕의 게이 스트리트에 1991년 맥의 미국 첫 매장을 오픈한 것에 이어 트레시 토크의 귀재이자 셀럽으로 활동한 레이디 버니를 직원으로 고용하였고, 마돈나에 의해 마이클 잭슨까지 방문하면서 성공적으로 국제 시장 첫 진출에 발을 딛었던 것이다.

 

이 인기가 얼마나 폭발적이었느냐면, 로라 메르시에 창업주가 로라 메르시에 브랜드를 런칭한 계기가 맥 매장에 바글바글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얘기했을 정도다.

 

ㅋㅋㅋ 내가 이정도였다 아 ㅋㅋ

그러나 1994년, 에이즈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면서 프랭크들은 맥의 영향력으로 에이즈의 인식 개선과 에이즈 환자의 치료를 돕기 위해 맥 에이즈 펀드를 개설한 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에스티 로더에 51% 지분을 넘기면서 사실상 사업권을 넘겨주게 되는데, 1997년 안젤로가 수술 중 심정지로 세상을 떠나자, 낙담한 토스칸은 맥의 지분을 완전히 넘겨버렸고, 맥의 찬란했던 역사는 사실상 끝이라 봐도 좋았다.

 

ㅋㅋㅋ 개꿀 ㅋㅋㅋ

이러나저러나 맥을 먹어버린 에스티 로더는 태생이 사업가였는지라 맥을 먹자마자 순식간에 해외 시장을 개척해 나갔는데, 문제는 브랜드 관리보다 판매에 치중한 나머지 맥의 신념이나 정체성은 오로지 펀드 하나에만 실어놓고 나머지는 모조리 앗아가 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무책임한 브랜딩 관리는 논란과 사건을 이르키기에 더할 나위 없는 경영 실책으로 이어졌다.

 

2010년, 맥은 패션 브랜드인 Rodarte와의 공동 컬렉션인 2010-11 F/W Rodarte 컬렉션에서 멕시코에서 일어난 사우다드후아레스 여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품을 출시해 버리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만다. 발표한 제품 대부분이 혈액이나 장기를 연상되게 만드는 색들이거나 제품명을 해당 살인이 일어난 마을의 이름을 차용해버리면서 논란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당연히 소비자들의 극심한 반발로 맥은 고의(...)가 아니었다며 10만 달러 기부와 컬렉션 발매를 취소하고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 주워 담는 격이었기에 반응은 뭐..

 

뉴스 헤드라인까지 떴었다

이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워낙 다국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한국에서도 맥에 대한 논란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정권이 뒤집히고 있을 2016년에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그 당시 여혐 연예인으로 낙인찍힌 장동민의 친구, 유상무가 과거의 장동민과의 라디오에서 여혐 발언을 쏟아내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었는데, 하필 맥의 광고 모델로 유상무가 나와버린 것이다.

 

마케팅 담당자는 그날로 승천했으리라

광고는 광속으로 내려갔지만, 설상가상 맥의 지도의 동해 표기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어서 기자들의 먹잇감으로 삽시간에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해프닝까지 벌어졌었고, 기사에 오르자마자 바로 일본해 표기를 동해 표기로 변경해 놓으며 다사다난한 행보를 꾸준히 걷고 있다.

 

그럼에도 맥의 가치와 근본은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인정받으며 현재의 맥을 만들어 냈는데, 아직까지는 큰 이변이 없는 한 그 가치가 쉽게 손상되거나 떨어질 일은 요원해 보인다. 잘 쌓아놓은 브랜드는 웬만해서는 무너짐이 없기에 앞으로도 맥은 변함 없이 건재할거라 본다.